FMC를 운영하며 커리어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대부분 이제 막 일을 시작 한 주니어들이었어요. 본인의 커리어의 명확한 방향을 잡고, 전문적으로 키워나가고 싶은데 막막하다는 것이 가장 많이 들은 고민이었습니다. 저 멀리 까마득해 잘 보이지 않는 커리어의 도착점을 고민하며, 하루라도 빨리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불안해 하면서요.
그래서 저의 지난 경력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 오늘은 실용적인 레터가 아니라 에세이(?) 같은 레터를 준비해 보았어요. 이런 느낌의 레터도 괜찮은지, 아니면 평소처럼 실용적인 내용에만 집중하는게 좋을지 freemoversclub@gmail.com으로 많은 의견 부탁 드립니다 :)
외국계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4번의 이직으로 5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어요. 깡 마른 대학생이 몸이 무거운 애 아빠가 되었고, 대학시절부터 살았던 서울에서 연고도 없는 경기도로 이사를 왔고, 건강하다고 자부 했던 몸에는 몇 번의 수술이 있었습니다. 작은 변화들까지 찾아보면 더 많아요.
저는 평생 아침 밥을 안먹을 줄 알았어요. 자취를 오래 해서 귀찮기도 했고,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해도 딱히 힘든 것이 없었거든요. 차라리 잠을 더 자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침 밥을 안 먹고 출근을 하면 힘이 없더라고요. 얼마 전부터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꼭 챙겨 먹고 있습니다.
저는 평생 어두운 옷만 입을 줄 알았어요. 혼자 오래 살았던 저에게 밝은 색 옷은 관리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저에게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출근 할 때는 늘 어두운 옷을 입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어두운 옷장이 은근히 신경 쓰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칙칙해지니 옷이라도 밝아야 겠더라고요. 시행착오가 있지만 밝은 색상의 옷을 입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살다보니 회사 일 뿐만 아니라 삶의 사소한 부분에서도 생각이 바뀌고, 나이가 들면서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어요.
만약 어린 제가 평생 아침 밥을 먹지 않겠다거나, 평생 검은색 옷만 입겠다는 중대한 결심을 하고 살았으면 큰일 날뻔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이렇게 변할지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20대나 30대에, 삶의 큰 부분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결정을 서둘러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정답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요.
되돌아 보면 제 커리어도 그렇습니다.
일을 막 시작할 때 까지만 하더라도 제가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때는 몰랐던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1. 마케팅이 이런 것인 줄 몰랐습니다.
대학생일 때는 마케팅이 멋진 카피를 쓰고, 창의적인 광고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마케터로 일을 시작 해 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톡톡튀는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시간보다 엑셀 속의 숫자와 대시보드 속의 데이터와 씨름하는 날들이 훨씬 많았어요. 지금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고, 우리는 고객의 문제를 찾고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요.
2. 스타트업에 일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저의 첫 직장은 외국계 기업이었는데요. 그 회사를 오래 다닐 줄 알았습니다. 안전함이 중요했던 소심한 저에게 스타트업은 매력적인 보금자리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재미있게 세상을 바꿔나가는 스타트업의 소식들이 계속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큰 회사가 답답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도 스타트업의 의미있는 변화에 동참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처음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결심 하던 날, 가족부터 친구들까지 많이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 스스로도 불안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잘 알고 있습니다. 스타트업도 똑같은 회사고 그저 일 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요.
3. 팀장으로 돈을 벌게 될 줄 몰랐습니다.
저는 늘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럿이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했구요. 그래서 여러 사람을 챙기고 이끌어야 하는 팀장의 역할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팀장으로 일 하고 있어요. 첫 회사에서 승진을 하여 팀장이 된 후 7년이 넘게요. 오래 전에 저를 알던 사람들은 깜짝 놀랄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잘 알고 있습니다. 팀장으로 일 하는데 사회성보다는 원칙이, 대단한 리더십보다는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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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됩니다.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몰랐던 스스로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무슨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나는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일을 하는 동기는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내가 가진 무기는 무엇인지, 이 모두 커리어를 시작할 때에는 몰랐던 것들입니다.
회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스스로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게 됩니다. 좋은 리더들을 만나면 도움이 되는 피드백으로 나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만들어 준 새로운 일의 기회들이 스스로가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는지 알 수 있게 해 주기도 하고요. 이 모두 커리어를 시작할 때는 예상하기 힘들었던 것들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해요. 커리어의 출발점에 서서 도착점이 보이지 않을때,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다음 스텝을 잘 밟는 것입니다. 예상하기 힘든 도착점을 너무 깊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요. 눈에 보이지 않는 도착점을 고민하며 제자리를 맴도는 것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정성스럽게 그리고 열심히 밟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해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다음 발자국을 잘 걷다 보면 모르던 사실과 스스로의 모습을 알게 되고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게 되지 않을까요? 그럼 출발점에 서서 도착점에 대해 했던 많은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해결 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제가 ‘나는 평생 아침을 안먹어야지’라고 다짐하는 것이 불필요한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